북마리아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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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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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동쪽, 괌 북쪽에 일렬로 늘어선 섬들로, 영어로는 Northern Mariana Islands이다.
미국의 해외령이며 현재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 그리고 주민이 선출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지사(governor, 총독)가 행정을 맡는다. 본래 차모로족이라는 폴리네시아계 원주민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나 스페인, 독일, 일본, 미국 등의 지배를 받으면서 여러 민족과 인종이 들어와 다양한 인종이 공존하는 지역이 되었다.
'북마리아나 제도'라는 이름은 말 그대로 '마리아나 제도'의 북부라는 뜻으로, 이곳을 처음 지배한 유럽 열강인 스페인이 첫 지배 당시 군주였던 펠리페 4세의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Mariana de Austria)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본래 마리아나 제도라는 말은 북마리아나 제도에 괌을 더한 섬들을 이르는 말이었는데 1898년에 미서전쟁의 결과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군사적 요충지가 될 수 있는 괌만 뜯어가고, 나머지 지역은 독일 제국에 팔게 되면서 괌과 나머지 마리아나 제도가 행정적으로 분리되어 '북'이라는 말이 덧붙게 되었다.
종교는 스페인 지배의 영향으로 가톨릭이 많은 편.
2. 역사
차모로(Chamoro)라는 원주민들이 기원전 2천년경부터 거주하였으며 이후 외부와 별다른 교류가 없다가 스페인인들이 유럽인들 중에는 처음으로 이들과 만났다. 특히 1521년 3월, 마젤란이 태평양에서 물도 식량도 다 떨어져 죽을동 살동하던 와중에 이 근방을 지나며 겨우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다만 마젤란이 상륙한 곳이 정확히 북마리아나 제도의 사이판인지, 바로 남쪽의 괌인지 불명확하다.
16세기에 마리아나 제도는 스페인의 식민지인 '스페인령 동인도'의 일부의 영토로 선포되었고 당시 국왕 펠리페 4세의 왕비 오스트리아의 마리아의 이름을 따서 마리아나 제도라는 이름을 붙였다. 원주민은 식민 통치자의 노예가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선교사에게도 마찬가지로 저항했다. 스페인인은 저항하는 원주민들을 일시적으로 괌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이곳을 관리할 여력이 없어진 스페인이 팔라우, 캐롤라인과 함께 이곳을 독일 제국에 매매하면서 독일 제국의 식민지인 독일령 뉴기니의 일부가 되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하자 일본 제국의 위임통치령인 남양군도를 이루는 도서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다음 일본은 이 지역의 여러 섬에 군사 기지를 설치했다. 한편 같은 시기에 미국도 괌에 군사 기지를 설치했다.
남양군도의 경우 1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이곳을 통치하는 것에 대해 국제연맹의 인정까지 받았으나 2차대전 패전으로 이곳을 잃은 것을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물론 당시에도 위임통치령이었기 때문에 일본 제국의 다른 식민지와는 다르게 국제연맹의 감시를 받았고 주변국(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의 눈치도 보았다. 이런 현상은 일본 제국이 국제연맹 탈퇴 이후 본격적인 군국주의 행보를 이어가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태평양 전쟁 이후 남양군도는 미국이 신탁통치령인 태평양 제도가 되었고, 북마리아나 역시 태평양 제도에 포함되었다. 점령 후 미합중국 해군과 미합중국 육군이 기지를 세웠고, 특히 육군 항공대의 B-29 폭격기 기지로 유용하게 쓰였다. 태평양 제도의 다른 도서들과 다르게 북마리아나 제도는 1975년 독립을 포기하고 미국의 해외령으로 들어갔으며 1978년 자치 정부가 수립되었다. 현재 미국의 영토 확장 역사의 가장 마지막을 장식하는 부분이다.
미국 정부로서는 바로 옆의 괌까지 묶어서 하나의 행정단위로 만들고 싶어하지만 현지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같은 차모로족이어도 2차대전을 겪으면서 한쪽은 미국편, 한쪽은 일본편이 되다보니 서로 안 좋은 꼴을 좀 겪어서 주민들간에 미묘하게 사이가 안 좋다고 한다. 물론 이러니저러니 해도 같은 미국령이고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서로 왕래와 교류는 많다.
3. 정치
이곳은 미국 50개 주와 워싱턴 D.C.를 포함한 미국 영토와 달리 주가 아니라서 미국 대선 투표권이 없다. 50개 주 및 워싱턴 D.C.로 주거지를 옮기면 투표가 가능하다.
대신 이곳은 미국의 Unincorporated territory, 즉 주로 편입할 생각이 없는 지역 중 하나로, 독자적인 자치의회와 정부수반(지사)을 선출하고 독자적인 사법부를 거느린다. 미국 대통령은 이 지역 지사에 임명장을 주는 역할만을 한다.
미국 영토이나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해외령이기 때문에 미국 시민권자도 입국심사와 세관검사를 거쳐야 한다. 물론 미국 시민권자는 여권확인만 하고 프리패스이다.
이곳은 본토와 마찬가지로 출생한 모든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고 있다. #.
4. 경제
북마리아나 제도의 주요 산업은 관광이다.
북마리아나 제도에서 관광산업이 본격화된 것은 1970년대 무렵인데, 이는 당시 일본의 해외 투자자본이 사이판으로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일본이 이곳에서 비교적 무난한 통치를 벌였기에 패전 이후에도 이곳을 '빼앗긴 땅' 비슷하게 느꼈다고 한다. 일본이 30여 년간 지배를 했던 곳이다 보니 일본 관련 시설도 많이 남아있고, 일본어 구사자들도 남아있어서 투자자들의 접근이 쉬웠다. 일본 경제가 되살아나는 1970년대부터 일본 투자자들이 이곳의 관광산업에 투자하여 많은 호텔과 리조트, 상점들이 생기면서 본격적인 휴양소가 되었다. 일본 국적기가 직항으로 취항하기 시작하였으며 당시 국적기를 타고 사이판에 첫 발을 디딘 관광객들은 일장기까지 휘날리며 잃어버린 땅에 다시 찾아온 것처럼 난리도 아니었다고... 일본에서 3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은데다 당시는 21세기와 달리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세가 대부분 전쟁과 내전으로 불안정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의 휴양지 관광 수요를 대폭 끌어들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일본인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으며, 80~90년대 이후로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먹고 살만해지면서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사이판으로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그 외에는 의류 산업이 북마리아나 제도의 주요 산업이다. 미국산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있지만 미국의 노동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점 때문이었는데, 이곳은 2007년까지 연방 최저임금이 적용되지 않고 북마리아나 제도 자치정부에서 정한 별도의 최저임금만이 적용되었다. 이게 연방 최저임금에 비해 낮았기 때문에 이곳에 노동집약적인 의류 생산공장이 들어선 것. 2007년까지 이곳의 최저임금은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의 절반 정도였다(...). 최저임금이 낮을뿐만 아니라 현지 노동법 자체가 미국 연방정부 노동법에 비해 많이 느슨해서 노동환경도 열악했고, 이 때문에 노동계의 단골 비난거리였다. 소송을 여러번 거친 끝에 2007년에 미국 연방정부에서 연방 노동법을 북마리아나 제도에도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그 뒤로 최저임금도 많이 오르고 노동환경도 개선되었다고 한다.
5. 국방
북마리아나 제도 지역은 괌과 더불어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좌우하는 중요 전략 거점중 하나였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 지역이 괌보다도 일본과 더 가깝기 때문에 일본 본토 공습시 항속거리가 줄어 연료가 절약되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요했다. 2차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점령한 사이판 지역 탈환 작전으로 사이판 전투에서 괌과 마찬가지로 미 해병대와 육군이 투입되어 치열한 전투를 치른 역사가 있다. 그 이후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상시 주둔하다가 철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북마리아나 제도에 상시 주둔하는 군대가 없다.''' 면적과 인구가 너무 작고 실효성이 없기 때문. 괌에 주둔하는 미 해군, 해병대, 공군 기지, 주 방위군이 북마리아나제도를 겸임하여 방위임무를 맡고 있다. 또한 미군 마리아나통합사령부의 관할지역이다. 미국 해병대와 괌 주방위군이 훈련할 때 가끔 오기도 한다.
"북마리아나 제도 주방위군(Northern Mariana Islands National Guard)"이라는 이름으로 북마리아나 제도에 별도의 주방위군을 창설하려는 논의가 있었긴 했다. 현재 미국 50개의 주와, 연방 행정구역인 워싱턴 D.C.은 물론이고, 해외령인 괌, 푸에르토리코,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에서는 주(州) 지위가 아닌 미국 해외령임에도 불구하고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과 군사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주방위군 등 군대를 배치하고 있었으나 같은 미국령 지위를 가지고 있던 북마리아나 제도는 공식적으로 주둔하는 미군부대가 없었다. 인근에 괌 주방위군이 있으나 괌과도 상당한 거리에 있어 유사시 즉각 대응과 전개가 어려운 점이 문제가 되어왔다.
결국 2001년에 미 연방의회 파견 괌 하원의원 로버트 언더우드는 북마리아나 제도에 주방위군을 창설하여 주둔시키는 법안(H.R. 3128)을 발의하였다. 이 법안은 미 의회 국방위원회로 이송되었으나 국회 회기가 마감하여 폐기되었다. 2002년에 상원의회에서 "북마리아나 제도 주방위군 법안"을 발의하였고 이 내용에는 민병대 수준의 방위부대 창설 내용이 들어가 있었고 이 법안 또한 폐기되었다. 이후 2003년에 미 하원에서 북마리아나 제도에 대한 2억 7500만 달러 상당의 주방위군 설치지원금 예산지원 법안을 발의하였으나 연방정부의 예산한계와 주방위군을 설치하기에는 북마리아나의 너무 적은 인구 (5만명 수준으로, 괌 인구의 1/3 정도이다.) 때문에 이 법안 또한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이후에도 여러번 북마리아나 제도 주방위군 설치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으나 끝내 설치되지 못하고 괌 주방위군이 북마리아나 제도 방위 임무를 현재까지 겸임하고 있다.
6. 지리
면적은 약 480㎢, 인구는 약 5만 3천명이다. 2000년의 약 6만 9000명보다 인구가 줄었다. 인구 대부분이 사이판 섬에 거주하고 있고 사이판보다 남쪽에 위치한 티니언 섬과 로타 섬에 각각 2000명 가량씩 거주민이 있다. 북부 섬들에는 인구가 매우 희박하다.
이 제도에 속한 유명한 섬은 자치 정부 수도가 있는 섬이자 도시인 사이판(Saipan)[4] 이 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깊은 곳, 마리아나 해구(Mariana Trench)가 이 제도에 있다. 수심 11,092m(...)
북마리아나 제도에 속한 작은 섬 티니언은 B-29 폭격기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할 핵폭탄들을 탑재하고 이륙한 곳이다.
미국이 태풍의 이름을 짓는 이유 중 하나로, 일단은 미국 땅이고 미국의 시민이기 때문에 이들이 겪을 재해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
7. 문화
북마리아나 제도를 상징하는 깃발에는 돌기둥 모양의 문양이 새겨져있는데 이는 차모로 원주민들이 과거 세웠던 거석문화 유적에서 따온 것. 라떼스톤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이 돌기둥을 여러개 세운다음 그 위에 다시 나무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차모로족은 나름 강한 권력을 가진 귀족층까지 존재하였던 발전된 문화를 가졌었다고. 현재 남아있는 유적중 가장 유명한 라떼스톤 유적은 티니안에 남아있는 타가라는 족장의 집터다. 그런데 이 족장의 집터에 남아있는 돌은 티니안 섬이 아니라 이웃섬인 로타에서 캐온 것이어서 나름 미스터리라고 한다. 큰 선박도 없던 시절에 크고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겨왔는지... 하와이 등에 폴리네시아인이 쓴 큰 카누 재현품이 있으니까 카누를 엮었든 통나무를 엮었든 배가 있었음은 확실하다. 들고 왔을 리는 없으므로.
공휴일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공휴일을 따라가나, 3월 24일, 11월 4일은 물론 부활절도 공휴일이다. 반면 올림픽 위원회는 없어서 이 곳 출신 선수들은 미국이나 괌 대표팀 소속으로 올림픽에 참가해야 한다(...). 그래도 아시아 축구 연맹 회원국이기 때문에 축구 대표팀은 존재한다. 자세한 건 북마리아나 제도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풋볼매니저에는 2006 버전부터 추가되었다. 언제부터인진 모르겠지만 2020 버전 기준으로 어째서인지 한국 선수들이 생성되며, 2차 국적으로 한국이 찍혀있는데 이름은 김준식, 김영롱 이런 한국 이름을 가진 선수들이 국대로 뛰고 있다.
8. 관련 문서
[1] 북마리아나 제도에는 카운티가 없이 기초자치단체 개념인 municipality가 최상위 행정구역이다.[2] 북마리아나 제도는 태생적 권리로서 자치를 보장받은 미국의 주들과는 달리 연방정부에게서 권력을 이양받아(devolution) 자치를 행한다. 그래서 명목상 국가원수는 미국 대통령이지만 주민들이 직접 뽑은 지사가 실질적으로 통치를 하며 미국 대통령은 그저 지사에 임명장을 주는 역할만 한다.[3] 연방 하원에 파견되는 의원. 다른 연방 하원의원과 거의 같은 권한을 지니지만 표결권이 없다.[4] 한국에게는 북마리아나 제도 대신 사이판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